1화

내 나이 19살, 
지금까지의 일생을 단 하루 만으로 평가받는 자비없는 날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불쌍한 수험생이다.  

그 부담감 때문일까. 
낮은 시험 점수는 더욱 바닥을 치고
친구와의 사이는 멀어지고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안하고 고개를 떨구고 다니며 학교생활을 하는게 적응될 무렵,
공허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음이 불편하다. 약간 아리다.
고독하다는 감정이 이런 것인가.
태어나서 초등학생, 중학생, 심지어는 고등학생 2학년이 될 때까지
왜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귀는 건지 이해를 못 했다.
입시라는 잔인한 제도가 없었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감정을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쓸쓸한 밤 새벽.
날씨는 덥지만 에어컨을 틀어서 시원하다. 
아니, 시원하다 못해 춥다. 에어컨을 서둘러 껐지만 이미 시린 나의 마음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고독한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나에겐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있으니깐.
바로 나의 작은 노트북이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공부에 집중하라고 컴퓨터를 안 사주시는 부모님 몰래 지금까지 모아놓은 적은 돈으로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대충 싸고 멋있게 생긴 노트북을 샀다.
부모님 몰래 거래해야 하니 택배는 사절이다. 

직접 대면해서 거래해야지.

값싼 노트북이라서 그런가? 판매자의 계정 사진과 설명란은 공백이었고 그의 거래내역도 없었다.
의심이 갔지만 사기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보자. 이거 애플 노트북 맞지?

사진 속 노트북 뒷면에는 원래라면 보여야 했던 사과로고 대신에
비슷하게 생긴 하트 모양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무언가를 사기만 하면 불량품, 짝퉁만 당첨되는 나의 팔자인가?
노트북은 미리 결제해버린 상태이다.아무리 짝퉁이라도 환불은 불가능하다.

판매자는 거래장소로 카페, 지하철역, 아파트 단지도 아닌 작은 빌딩.
집과는 가까웠지만 지금까지 지나치기만 했던 낡고 작은 빌딩 3층에서 거래를 제안했다.

판매자와 대면을 하자마자 거래 취소를 하게 해달라고 울고 불며 사정할 예정이었기에
거래 장소를 바꾸자고 요청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거래 당일날 초라한 낡은 빌딩에는 간판이 없었다.
아니 지워져 있었다. 10 년은 된 것 같은 빌딩 앞간판은
2013년 초기 스마트폰 홍보 포스터 마냥 촌스러운 폰트와 배경으로 점칠 되어있었다.
아마 이 건물은 예전에 한창 스타트업하다가 망해버린 디지털 회사가 아니었을까...?

건물 안은 깜깜했다. 갑자기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가버리면 거래사이트에서 차단되어 영원히 중고거래를 못할 것이다.
그래 내 나이 19살, 이 정도도 못해? 제일 튼튼한 나이인데 여기서 돌아가면 나의 존재가치는 어디있는가!
나는 줄곧 보던 에반게리온의 초호기(로봇 애니메이션의 힘세고 무거운 철갑로봇)가 되었다고 상상하며 자신감이 찬 움직임으로 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옆면에는 낡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2013년 최고의 '인공지능' 노트북 mq-1788! 곧 출시됩니다!
사진에 보이는 노트북은 내가 사려던 것과 일치했다.
내가 고른 제품은 2013년 생산된 짝퉁 노트북이란 말인가!
역시 나는 제대로 된 물건을 살 때가 없단 말이야..
근데 2013년에도 인공지능이라는 게 있었나? 
에이 설마. 흔한 중소기업의 과대광고겠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깜깜한 공간 속 책상들 사이를 지나니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작은 책상위에 모니터에서 불빛이 나오고 있는것 같다.
하지만..인간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한건가?

가슴이 쿵, 떨어지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하였다.
이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지? 맞아.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빨리 도망가야 돼. 누가 나를 의도적으로 여기에 불렀어. 
아무래도 이거 위험하겠는걸? 

깜깜한 주위를 둘러보며 엘리베이터 문으로 달려가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지 않았다. 에러가 난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래, 계단으로 가야겠어.

계단으로 뛰어가는 순간, 계단 문이 모터 소리가 나며 닫히기 시작했다.
쾅 닫혀버린 계단문 앞에서 나는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았다. 왜, 나를, 왜 하필 나를!...

[안녕하세요? 베타테스터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요 베타테스터님. 이리로 오시죠.]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천장에 수십 개씩 다닥다닥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저항해도 탈출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아무 말 없이 목소리를 따라갔다.
그 목소리는 영화관 속 입체음향처럼 천장에 달린 수십 개의 스피커를 이용해 동서남북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