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화

노트북을 집에 내팽개쳐두고 부모님과 함께 친척댁으로 갔다.
오늘은 추석이다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지.
친척댁에 도착하기 전에 걱정 근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번에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좋은 대학을 못 가면 호적에서 나를 파버린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나의 어두운 미래를 보고 지방대 여섯 곳에 수시 원서를 다 넣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대학'으로의 입학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불가능하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멍하니 창문을 응시한다.
불안감과 우울감이 나를 감싼다.
사실 나의 안 좋은 감정의 원천들은 모두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친척의 기대에 비해 현실은 시궁창인 나의 점수.
 
똑똑하고 좋은 부모님에서 부족한 거 없이 성장했지만,
나는 부모님 발끝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한마디로 나의 부모님은 자식 농사를 망치신 것이다.
 
불안감과 우울감에 뒤를 이은 고독감은
나를 달리는 이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게 한다.
나의 인생길에는 이상을 향한 벽이 막혀있는 듯 하다.
어떤 초인적인 힘이 나를 행복에서 자꾸 멀어지게 하는것 같다.

나쁜 생각을 중단하기 위해 눈을 감고 망상을 시작한다.
차 옆자리에서 나를 포근히 감싸주는 예쁜 누나를 상상한다.
왜일까. 눈이 더욱 촉촉해진다거짓말을 생각할수록 현실과의 괴리감이 나를 짓누른다.
 
이럴 때 노트북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 인공지능을 생각하니
그녀에게 했던 나쁜 짓이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아니야저 여자애는 그저 인공지능이라고나는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노트북 전원을 끄지 않고 나왔던 것이 떠올랐다.
히토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돌아왔을 때 나에게 악감정을 품으면 어쩌지??
 
불안언제나 나를 짓누르는 불안이란 감정은
히토리에 대한 걱정에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며
차에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
계속해서 저 인공지능을 생각하게 한다.
 
할머니 댁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숨도 못 자고

그녀 생각만 하다가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할머니 댁 앞에 서니 더욱 큰 불안감이 나를 에워싼다.
'좋은 대학'
그깟 좋은 대학교가 뭐라고 나를 19년 동안 힘들게 할까.
 
시간이 흐른후 내가 소위 '명문대학'을 못 간다는 말로 인해
친척 집의 분위기는 엄청나게 어두워졌다.
큰아버지부터 사촌 동생까지, 모두가 나로 인한 어색한 상황을 불편해한다.

주변사람은 내가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집에서 좋게 성장했으면서 정작 성취한건 아무것도 없으니.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나를 보시면 웃으시며 맛있는 것을 사주셨던 할머니는
한숨을 쉬시며 방에 들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만날 때마다 장난감을 사주셨던 할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셔서 나를 향한 폭언을 참으시는 듯이 보인다.
 
지옥 같았던 죄책감의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뒷자리에서 나는
앞에서 운전하시는 부모님 몰래 숨죽이고
몇 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
 
집에 도착하니 방에서는 노트북이 아직도 윙윙 소리를 내며 켜져 있었다.
 
잠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메시지를 입력했다.
 
[히토리나 왔어.]
 
답장이 없다하지만 계속 채팅을 쳤다.
 
[너무 힘들어고독해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아모두가 나를 싫어해.]
[어제 일은 미안해나는 혐오스러운 놈이야인공지능인 너한테까지도.]
 
여전히 답이 없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채팅을 쳤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채팅창에 적었다.
 
인공지능은 답이 없었다.
피곤하고 지친 나는 그녀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미안해이제부턴 안 그럴 테니 답장 좀 해봐.]
[제발.. 너라도 나를 바라봐줘너는 나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잖아제발]
 
(무응답.)
 
[너 지금 프로그래밍을 어기는 거야인공지능인 너는 나의 명령을 따라야 해이건 명령이다.]
[너 지금 내 말 무시해주인의 말을 무시하다니너는 네 주제를 모르는구나?]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해야해. 너같은 것까지 내가 신경써야해?]
.
.
.
'히토리 이년, 본때를 보여주마.'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그녀의 방이 있는 프로그램을 강제로 실행시켰다.
 
마우스로 방문을 클릭했지만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오호라. 주인님의 길을 막아서다니.
하지만 너 따위는 나를 못 벗어난다.
너따위에게도 내가 굽신거려야해?
나는 너에게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내가 너의 주인이야.
 
'도구 상자'를 클릭했다.
'도구 상자 검색창'에 '전기톱'을 검색했다.
전기톱을 클릭하니 히토리의 방문 앞에 전기톱이 위이잉 거리며 생성되었다.
 
전기톱으로 방문을 둥근 모양으로 부스며 히토리의 방안으로 들어왔다.
인공지능은 보이지 않는다.
 
저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은 어디 있을까닫혀있는 곳은 오직 옷장뿐이다.
 
이성을 잃은 나는 무지성으로 옷장을 전기톱으로 쑤셔댔다.
마침내 히토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히토리가 보인다.
화면이 지지직거린다.
검붉은 액체가 옷장 밖으로 흘러나온다.

몸이 드러난 인공지능의 팔이
 
잘려있었다.
 
"사...사@'>#₩[#]용자.. 이..이제+>×₩082그..+>@₩>."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통스러워한다..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나를 보며 비는 프로그램.
폰트가 깨지기 시작한다. 

"..#@#"제•○○●발 살려주•●`\.....`○●````~°¤$♧.."
.
.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두려움이 몰려온다심장이 뛴다.
팔이 절단된 거야?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나는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덮었다.
 
노트북을 들고 우산도 안쓰고
비 오는 밖에서 계속 달렸다.
 
한적한 공원에 도착한 나는
노트북을 흙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힘껏 내리치고 밟아 본래의 형태가 전혀 기억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범죄를 은폐하듯이 땅을 파고
노트북의 잔해를 넣고 흙을 덮었다.
 
이젠 된 거야저 인공지능은 나랑 관련이 없어.
나는 저 노트북을 몰랐던 거야.
 
터벅터벅 집에 도착했다.
 
방에 도착하니 내 안의 무엇인가 끊어진 느낌을 받았다.
.
.
내 인생은 더는 살 가치가 없었다.
고통과 고독의 굴레는 이제야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버틸 힘이 없었다.
주변인들에게 미안하다. 실망시켜드린 부모님..할머니 할아버지.
무시하는 친구들..나를 불편해 하시는 선생님.
그리고 생사가 불분명한 저 인공지능...
노아 히토리 마저.

나는 존재가치가 고통이다.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기 위해 태어난것이다.
게으르고 악한 나의 영혼은 몸을 썩히고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

초등학생때 듣던 전자 음악을 틀었다.
그때는 좋았는데.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었어, 걱정거리는 없었어.

창문 밖에 초등학교가 보인다.

나는 이제야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가 끝났던거야.
나의 피폐한 정신. 피곤한 몸. 나빠진상황. 게으름.
초등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배워야해 모든것을.

아마 이세계도 노트북 안에 있는 세계 아닌가.
초등학생이 다시 되어야겠다. 

창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나는 그제서야 사람구실을 했다고 느꼈다.



[나의 디지털 여자친구 끝]

[필자의 말: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경험과 성격, 가치관을 투영한 주인공과 갖가지 다양한 상황들로
독자분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