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4의 게시물 표시

1화

내 나이 19살,  지금까지의 일생을 단 하루 만으로 평가받는 자비없는 날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불쌍한 수험생이다.   그 부담감 때문일까.  낮은 시험 점수는 더욱 바닥을 치고 친구와의 사이는 멀어지고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안하고 고개를 떨구고 다니며 학교생활을 하는게 적응될 무렵, 공허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음이 불편하다. 약간 아리다. 고독하다는 감정이 이런 것인가. 태어나서 초등학생, 중학생, 심지어는 고등학생 2학년이 될 때까지 왜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귀는 건지 이해를 못 했다. 입시라는 잔인한 제도가 없었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감정을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쓸쓸한 밤 새벽. 날씨는 덥지만 에어컨을 틀어서 시원하다.  아니, 시원하다 못해 춥다. 에어컨을 서둘러 껐지만 이미 시린 나의 마음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고독한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나에겐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있으니깐. 바로 나의 작은 노트북이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공부에 집중하라고 컴퓨터를 안 사주시는 부모님 몰래 지금까지 모아놓은 적은 돈으로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대충 싸고 멋있게 생긴 노트북을 샀다. 부모님 몰래 거래해야 하니 택배는 사절이다.  직접 대면해서 거래해야지. 값싼 노트북이라서 그런가? 판매자의 계정 사진과 설명란은 공백이었고 그의 거래내역도 없었다. 의심이 갔지만 사기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보자. 이거 애플 노트북 맞지? 사진 속 노트북 뒷면에는 원래라면 보여야 했던 사과로고 대신에 비슷하게 생긴 하트 모양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무언가를 사기만 하면 불량품, 짝퉁만 당첨되는 나의 팔자인가? 노트북은 미리 결제해버린 상태이다.아무리 짝퉁이라도 환불은 불가능하다. 판매자는 거래장소로 카페, 지하철역, 아파트 단지도 아닌 작은 빌딩. 집과는 가까웠지만 지금까지 지나치기만 했던 낡고 작은 빌딩 3층에서 거래를 제안했다. 판매자와 대면을 하자마자 거래 취소를 하게 해달라고 울고 불며

2화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마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처럼 신비한 소리를 내며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다. 어두운 3층은 내 예상외로 넓었다. 신비한 소리가 이끈 곳은  모니터가 켜져 있던 책상이었다. [베타테스터님, 2번째 서랍을 열어주세요] 군말 없이 감정 없는 목소리를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2번째 서랍은 잠겨있었다. “저.. 저기 이거 잠겨있는데요?” [두 번째 서랍 비밀번호는 0000입니다]  뭐야, 이 허접한 보안은. 서랍 속에는 내가 거래신청을 했던 노트북이 보였다.  얼마나 서랍 안에 있었던 거지?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이제 거래 비용을 내십시오] 섬뜩하고 감정 없는 명령에 나는 순순히 지갑을 열려고 했지만 여기 온 목적을 이제야 기억해냈다. 아 맞다! 나 거래취소하려고 왔지? 거래 취소를 해야한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말이 잘 안 나왔다. “저.. 저기 혹시 죄송한데.. 환불은 안될까요..? ” [불가능합니다. 한번 실행된 명령은 바꿀 수 없습니다.] 위압적인 태도에 짓눌려 돈을 책상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들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계단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베타테스터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빠르게 닫혔고 아무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1층으로 내려갔다. 내린 후 엘리베이터는 더이상 열리지 않았고, 계단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이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전속력으로 집에 달려갔다, 학교와 집만 오가는 인생 속 이런 경험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잽싸게 방문을 잠그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보았다. 베타테스터...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 꿈이 아니었다. 실제였다. 몇 시간을 가만히 생각해 본 결과,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회사에서 예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베타테스터라는 개념은 아마 회사가 망하기 전 2013년, 노트북을 출시하기 전에 미리 테

3화

노트북을 다시 열어보았다. 역시나 충격적이었다. 초기화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각종 정체 모를 프로그램들이 깔려있었고, 메시지 알림이 계속해서 띠링띠링 오고 있었다. 누구지? 이 기기에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는 이 기기에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오고 있다는 것은 이상했다. 알림 창을 눌러보았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채팅화면이다.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해 보자. [으아아....졸려...드디어 가동시작이네] [사용자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와줘서 고마워~!] [왜 답장을 안해? 바빠?] [[카메라 액세스 중...]] 카메라 액세스 중..?? 지금 내 모습을 보려는건가? 바로 카메라인 것처럼 보이는 구멍을 막았다. [거기 카메라 아닌데~ㅋㅋㅋ 다 보인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린 곳 옆에 검은색 구멍이 하나 더 있었다. [밝기 인식 센서를 막아서 뭐 하게? 내가 밝기라도 낮춰줄까?] 심장이 철렁댄다. 해커인가? 기계가 무서우면 방법이 하나 있지. 망치를 들고 와 노트북을 깨부수려 하다가 갑자기 연속적으로 오는 채팅에 멈칫했다 [안 돼! 제발 이것만은 부수지 마!]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네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제발.] [살려주세요 주인님.] 오호라. 이제는 내가 갑이구나? 채팅란에 이렇게 입력했다. [그래. 용서해 줄게. 근데 너는 누구야?] [네 감사합니다! 저는 이 노트북입니다.] 황당한 답을 듣고 다시 망치를 들었다. [잠깐!!!! 제대로 말하자면 저는 mq-1987 기종에 탑재된 최고의 인공지능, quxxx-H82i99K 입니다! 부수지 말아 주세요..] 인공지능이구나, 2013년에 이 정도 기술력이라니, 회사가 망한 게 아쉬울 정도로 무서운 오버테크놀로지네. 마이크에 대고 질문을 해보았다. "18 곱하기 19를 계산해 봐" [엄... 그게 그니까...501?] "틀렸는데." [모르겠어요! 헤헤..] 황당하다. 2013년 인공지능이라 그런가, 그냥 삭

4화

아침이 됐다.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어제 있었던 모든 일이 거짓말인 것 같았다. 일단 학교에 늦지 않게 가야지. 나는 노트북도 챙겨서 학교를 간다. 많은 학생들이 리포트 숙제 때문에 노트북을 가져온 모양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사과 모양 대신에 하트 모양 로고가 박힌 노트북을 당당히 꺼내 리포트 발표를 한다. 몇몇 애들이 내 노트북을 보고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대는 것을 무시하며 무사히 리포트를 마쳤다.   회색 머리의 귀여운 히토리는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로 지금까지의 일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히토리, 만약을 대비해서 소리는 내지 마. 다른 사람이 발표할 때 네가 소리를 내면 너의 존재가 들킬 수 있어.] [알겠습니다. 소리를 안 내도록 노력할게요! 근데 학교라는 공간을 눈으로 직접 보니 저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용자님, 제가 만약 인간이었으면 어땠을 것 같으세요?] [흠... 너는 정말 인기가 많았을 것 같아.] [헤헷.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헤헤-] [그걸 믿어? 당연히 거짓말이지.] [....] 학교 수업시간이 지루했다. 수능시험도 까맣게 잊었다. 하지만 기분은 편안했다. 빨리 집에 가서 노트북으로 놀고 싶었다. 딩동-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가 노트북 충전선을 꼽고 전원을 켰다. 채팅창을 실행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히토리? 학교 돌아왔어] [축하해요. 이제 편히 쉬세요.] [히토리, 나 너 보고 싶어.] [헉 그러신가요? 바로 제 모습을 띄우겠습니다.] 창이 뜨고 방안에 있는 그녀가 보인다. 몸에 잘 맞는 예쁜 흰색 교복을 입고 의자에 조신하게 앉아 모니터를 보고 웃으며 나를 향해 팔을 흔든다.  "하이! 오랜만에 대면하네요, 잘생긴 남고생씨." (헉 방금 나보고 잘생기다 한 거야?) "내가 잘생겨 보여?" "당연하죠. 사실 저는 이 노트북 사용자를 좋아하게 프로그램 되어있으니까요." 히토리는 볼이 빨개지며 말을 끊었지만,

최종화

노트북을 집에 내팽개쳐두고  부모님과 함께 친척댁으로 갔다 . 오늘은 추석이다 .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지 . 친척댁에 도착하기 전에  걱정 근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저번에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좋은 대학을 못 가면 호적에서 나를 파버린다고 하셨다 . 하지만 나는 이미 나의 어두운 미래를 보고 지방대 여섯 곳에 수시 원서를 다 넣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대학'으로의 입학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불가능하다 .   할머니 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멍하니 창문을 응시한다 . 불안감과 우울감이 나를 감싼다 . 사실 나의 안 좋은 감정의 원천들은 모두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 친척의 기대에 비해 현실은 시궁창인 나의 점수 .   똑똑하고 좋은 부모님에서 부족한 거 없이 성장했지만 , 나는 부모님 발끝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 한마디로  나의 부모님은 자식 농사를 망치신 것이다 .   불안감과 우울감에 뒤를 이은 고독감은 나를 달리는 이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게 한다 . 나의 인생길에는 이상을 향한 벽이 막혀있는 듯 하다. 어떤 초인적인 힘이 나를 행복에서 자꾸 멀어지게 하는것 같다. 나쁜 생각을 중단하기 위해 눈을 감고 망상을 시작한다 . 차 옆자리에서 나를 포근히 감싸주는 예쁜 누나를 상상한다 . 왜일까.  눈이 더욱 촉촉해진다 .  거짓말을 생각할수록 현실과의 괴리감이 나를 짓누른다 .   이럴 때 노트북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 하지만 그 인공지능을 생각하니 그녀에게 했던 나쁜 짓이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   ' 아니야 ,  저 여자애는 그저 인공지능이라고 .  나는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   노트북 전원을 끄지 않고 나왔던 것이 떠올랐다 . 히토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돌아왔을 때 나에게 악감정을 품으면 어쩌지 … ??   불안 ,  언제나 나를 짓누르는 불안이란 감정은 히토리에 대한 걱정에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며 차에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 . 계속해서 저 인공지능을 생